L워드: 동성애에 대하여

순전히 간접경험에 의지해 레즈비언을  ‘그래 이 사람들은 단지 동성에게 감정을 품는다는 점만 차이가 있을 뿐 그 외는 이성애자와 하등 다를 바 없지.’ 라고 여겼다. 나 스스로 여유로운 사고체계를 갖추었다고 확신하고 있었던 셈. 그런데 ‘L워드’ 를 보며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반응은 메스꺼움이었다. 변태 같은 상황이 아닌 매력적인 두 여성의 애로틱한 키스 장면을 보았을 뿐인데 정상이 아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정상이 아닌 ‘비정상’이라 부를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성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을 칭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또는 그리 불리는 동성애자라면 혼란이 이미 마무리된 상태, 즉 옳든 그르든 성에 대한 정체성이 확립된 상태를 말한다. L워드에 등장하는 레즈비언은 모두 이 상태에 머무른다. 그럼에도 그녀들을 보고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한 이유는 왜인가.

우선 정보의 비대칭, 매체에서 이들 세계에 관해 습득 가능한 정보의 양은 어차피 제한적이고 따라서 서울에 갓 상경한 농촌 총각의 문화적 충격 비슷한 게 아닌가 싶은데, 이 경우라면 별로 문제 될 게 없다. 무지를 인정하고 도전받아 추락한 사고체계에 수정을 가해 살포시 위장하면 되는 것이다. 다른 이유라면 미디어의 과장, 어차피 동성애를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성인용 방송인만큼 반드시 섹스가 아니더라도 발정난 암캐같은 노골적인 표현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때때로 미디어는 순간적으로 비판력을 흐리게 한다. 그러니까 L워드를 보는 동안 내 비판력은 작동이 잠깐 정지하고 그때를 기회삼아 바이러스가 파고든 것이다.

만일 그리하여 비정상의 바이러스가 확산되었을 경우 편견이 형성되고, 그 편견은 이 좁은 땅덩리에서 그들을 향해 어떻게든 날아갔을 것이고, 마무리 된 혼란을 재발시켰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을 진짜 비정상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냥 웃어넘길 수 없는 건 그래서다. 그러나 무엇보다 여유로운 사고를 갖추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던 그 확신에 흔들림이 감지되었다는 것, 나에 대한 어떤 확신조차도 확신할 수 없고 전파 따위에 흔들릴 만큼 불안정한 사고와 인식를 지니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정상인이라는 그 얄팍한 확신으로 남을 비정상으로 바라보려 했다는 사실이, 어쩐지 나를 반성시키는 하루입니다.

"정상이란 가치는 영원한것도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다. 정신이상 상태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자명하고 상식적인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 미쳤다는 인식은 사고의 역사의 일부분이며, 광기 자체는 역사적으로 정의되는 것이다. 광기란 말이 되지 않는 것.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말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으로 그 문화 안에서 상식과 진지함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다. 그 정의는 역사적으로 크게 바뀌어 왔다. 광기라고 불리는 것은 특정 사회에서 생각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을 가리킨다. 광기는 한계를 고정하는 개념이다. 광기의 경계는 ‘다른’ 것이 무엇인지를 정의한다. 미친 사람은, 사회에서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 행동을 용인해 주지 않는 사람, 억눌러야 하는 사람이다. 각 사회마다 광기를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가 다르다. 어떤 정의도 다른 것보다 덜 편협하다고 말할 수 없다."
- 아르토에게 다가가기: ‘우울한 열정’, 수전 손택

by allthat | 2006/05/20 09:09 | - 인생, 배우다 | 트랙백(1) | 덧글(2)

트랙백 주소 : http://allthat.egloos.com/tb/198432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퀴어블로그 Queer... at 2006/05/20 09:50

제목 : 레즈비언을 이해한다는 일반들은 사실...
레즈비언인 나를 이해한다는 내 친구들도 사실, 100% 이해하지 못한다. 친구들에게 커밍아웃한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여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 그래도 질문을 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몸짓 자체가 그저 고마울 뿐이다. 어쨌든, 이성애자인 그들은 동성애자를 100% 이해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들도 똑같다. 사실, 나는 이성애자를 100% 이해할 수가 없다. 그건 그들이나 나나 서로의 입장.....more

Commented by 똥사내 at 2006/05/20 10:04
무슨 일이든 해보고 나서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고
특히 다르다고 해서 배척하는 건 위험한 생각이죠,
여러 사회문제가 다르다는 것을 틀린 것으로 매도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요
Commented by 미디어몹 at 2006/05/21 11:08
allthat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에 링크되었습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