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7월 09일
돌아온 슈퍼맨
6월 28일 전 세계 동시개봉. 그러니까 9일 새벽이면 240시간하고 12시간이 흐른 셈이고 나는 그 240시간하고 12시간 동안 여기저기서 무자비하게 쏟아져 나오는 감상문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일단 퍼걱거리는 막대기에 설탕 몇 술 살살 뿌린 뒤 ‘끝내주는 맛’(전혀!?)이라며 순진한 문구까지 붙여 놓은 츄러스인가 뭔가 하는 것과, 과거 애인님께서 냄새 나 저리 치워. 그래서 나까지 괜히 찝찝해지던 하지만 무지 좋아하는 나쵸 한 접시와, 어따 빼돌렸는지 땅콩은 온데간데없는 땅콩버터구이오징어 한 봉지를 가지고 푸-욱 좌석에 엉덩이를 묻었다. 애초 계획은 깔끔하게 영화만 보고 집으로였지만 그만 고소한 버터 냄새에 매혹당해 (그리고 주문하시겠습니까? 하는 해맑은 여직원의 미모에 반해) 지갑을 열었던 것이다.
‘잊어버리는 거야.’ 새벽 12시 35분을 감사해하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새벽의 흐릿한 정신은 일부러 기억을 유지시키거나 재생해내는데 확실히 불리하다. 어쨌든 언제나처럼 영화시작 전부터 소스를 듬뿍 찍은 나쵸를 익숙한 입놀림으로 쩝쩝거렸다. 임수정이 주연한 어떤 경마 영화의 예고편을 보며 토비 맥과이어와 그의 애마 ‘시비스킷’이 떠올랐고 다행히 ‘최초의 경마…….’ 따위 유치한 카피는 보이지 않았다.
시작. 이미 TV 시리즈 스몰빌로 슈퍼맨의 유년시절을 다루고 있으니 극장 판은 어디서부터 일까? 하는 궁금증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운데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키는 추락씬이 있었고, 그리운 이름의 ‘벌거벗은’(흐응) 클라크가 무려 ‘누워’ 계셨다. 리턴즈답게 그의 얼굴은 팽팽했고 여전히 미남이었으며 조또 부럽게도 근육질이었다. 젠장, 당신은 정의 대신 이제 내게 열등감을 안겨주러 온 거에요!? 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스쳤지만 그 선망은 이내 렉스 루터를 향한 관심으로 깡그리 잊혀졌다. 오, 공짜 좋아하면 역시 대머리가 되는군. 엄지와 검지를 절묘이 구부려 턱을 괸 채 흐음 심각하다는 표정을 한 번 짓고 녀석의 대머리를 주시하다가 이 말을 내뱉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슈퍼맨의 전매특허 항공기 구출을 한 번 감상해주고 그러면서 여주인공의 탄탄한 체력과 맷집에 감탄하며 ‘저 여자 통뼈가 틀림없지?’ 하고 형에게 묻는데 ‘어.’ 라는 역시 남자다운 싱거운 대답을 하였다.(슈퍼맨의 씨를 받았다면 약골은 아닐거란 추측) 이후 주위는 깜깜과 환함을 반복하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슈퍼맨은 화면 속으로 쏘-옥 돌아가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가장 먼저 밖으로 튀어 나왔다. 가랑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차를 향해 걸으며 이상하게 말똥해진 정신으로 조각조각난 기억을 끌어모아 어설픈 평을 내리는데, 문득 ‘변신!!!’ 흉내를 내고 ‘xx맨 시리즈’를 동경하며 80년대의 코흘리개 시절을 통과한 내게 ‘정의감’을 알게 해줬고, 훌쩍 커버린 이십대의 내게는 '열등감'을 선사해줬던 슈퍼맨이 앞으로 한 10년에서 15년 뒤 또 다시 리턴즈될 그때. 과연 그는 내게 무엇을 선물할까, 하는 쓸데없는 궁금함이 떠올랐다.
덧. 따지고 보면 이야기는 핵은 본진 관리를 소홀히 한 슈퍼맨의 불찰에서 비롯되었다. 아아, 슈퍼맨 그러니까 ‘빈집털이’ 방지용 포톤캐논 한 기 정도는 심어놨어야지요. 스타를 안 해본 사람과 해 본 사람은 차이인가요. 그리고 매번 그렇지만 극장 에어콘 온도 좀 내려주길. 너무 춥다고. (설마 냉기돌풍을 이용해 연인끼리 포옹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극장측의 배려인가!)
덧2.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애국주의자임에 틀림없다. 슈퍼맨이 조낸 얻어맞는 장면에서 루터의 애인이 흘리는 눈물의 의미란! 아 정치적으로 보기에는 어울리지 않게 코믹했던.
# by | 2006/07/09 17:40 | - 문화건달 | 트랙백(2)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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