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1월 11일
독감 인간의 하루
유행을 좋아하는 병원
간호사가 이름 모를 약물을 엉덩이에 삽입하며 말했다. 가죽이 상당히 질기시네요. 탱탱한 건데, 라고 나는 대꾸하지 못했다. 누가 감히 칼자루를 쥐고 있는 女에게 대꾸할 수 있을까. 게다가 치명타 확률 높은 뒤치기 형세가 아닌가. 올해도 독감이 유행입니다. 그래서 행복하다는 듯 의사는 말했다. 물을 많이 마시란다. 나름대로 굴곡 많은 인생 물은 지겹도록 먹었습니다, 라고 방금 전에도 대꾸하지 않았던 나. 부어오른 후장과 주사기의 상처를 안고 뒤뚱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여기는 교보문고
탁틱 탁!, 그 책은.. 절판입니다. 흐응. 그렇군. 국내소설로 이동. 쓱- 훑어보며 그 중 하나를 빼든다. 책표지에는 김훈이 건방지게 담배를 꼬나물고 있고 그 아래 성석제가 넌지시 웃고 있고 어이쿠! 은희경까지. 가만 그 옆에 그림은 박민규다. 그러니까 도저히 뿌리치기 힘든 책이 지금 내 손에 들려있다. 2005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 고매하신 평론가들께서 그 뛰어난 지성으로 한차례 검증을 마친 물건. 내 싸구려 지성의 검증을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성큼 계산대로 직진해 냉큼 계산을 치루고, 책을 사고도 돈을 받았다는 사실에 콧노래까지 부르며 기쁘게, 교보문고를 나왔다. 밖은 콧노래 대신 콧물이 나오게 추웠다. 아씨- 휴지 없는데.
독감 인간의 독서
한 번, 두 번, 세 번 제길 너무 목이 탄다. 결국 의사의 말대로 되어버렸다. 그러고보니 간호사들, 귀여웠어. 칼로 조각한 문장의 김훈을 읽고, 거침없이 내달리는 성석제를 쫒았으며, 익살 속에 숨은 진정성의 박민규를 거쳐 나는 책을 접어 내려놓았다. 제길 어째서 약물 복용 상태에서 독서를 한 최초의 독감 인간이 된걸까.
독감 인간의 하루
하늘 저켠에서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어디선가 밥짓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코끝에 살아나는 매캐한 냄새의 기억. 난 시골 냄새가 좋더라 말하던 1998년의 그녀. 기온이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걸음은 빨라졌고 두부와 소시지를 담은 비닐 봉투가 덜렁거렸다.
# by | 2007/01/11 20:16 | - 문화건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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